국회에서 교육관계법이 처리되는 과정을 지켜본 필자의 소감은 한마디로 충격 그 자체였다. 국회나 교육부가 국가기구의 일부로서 국민적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집행해야 함에도 불구하 고 사학재단이라는 특정집단의 로비대상이 되어 교육의 공공성과 민주성을 철저하게 짓밟아 버렸던 것이다.

혹 필자의 주장이 너무 일방적인 것이 아닐까 의심하는 이들을 위해국회에서 벌어진 과정을 재구성해 보았다.

지난해 말에 교육부는 사립학교 운영의 민주화와 투명성을 확보하고 학교 구성원의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사립학교에 학교운영위원회를 심의기구로 의무적으로 설치하고 △사립학교 이사회에 공익이사를 3분의 1 이상 참여하는 것을 보장하며 △대학의 학사운영을 심의하는 교무위원회에 평교수가 참여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초·중등교육법', '고등교육법', '사립학 교법'의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개정안이 교육단체들의 의견을 모두 수용한 것 은 아니고 여러 이해단체들의 입장을 절충한 타협안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교육의 공공성과 민주성을 확보하려는 꽤 참신한 수정안이었다.

하지만 지난 6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법안심사소위는 개정안을 심의하면서 △학교운영위 원회를 선택적 자문기구로 후퇴시켰고 △공익이사제 도입과 교무위원회 조항을 완전히 삭제 하였을 뿐만 아니라 △원안에도 없던 임시이사(관선이사) 임기조항을 신설하여 비리 재단의 복귀마저 가능하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국회는 그간의 관행에 비춰보면 놀라울 정도의 순발력을 발휘하여 지난 10일 교육위 전체회의를 열어 임시이사의 임기를 2년으로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소위의 안을 그대로 통과시키고 12∼13일에 법사위원회를 거쳐 본회 의에 상정하여 확정했다.

구조화된 사학비리에 대한 법적 제도적 방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음에도 불구, 국회는 이를 무시하고 오히려 사학재단의 주장만을 받아들인 것이다. 바뀐 조항들의 유일한 수혜자가 사학재단임에 비추어 막강한 로비력을 갖춘 사학재단들의 힘이 작용했을 가능성을 쉽게 추론할 수 있다.

국회의 이런 처사는 그것이 과연 '공익'을 위해 존재하 는 것인지 근본적인 회의를 불러일으킨다. 개악된 교육관계법안이 그대로 공포된다면 사학 의 비리와 독점적인 학교운영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된다.

의아스런 일은 개정안을 만든 교육부가 개악에 저항하기는커녕 심사소위에서 동의하고 현재까지 아무런 항의표시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국민회의는 이 법안을 유보한 다는 당론을 12일 오전에 공식으로 발표했다가 오후에 다시 당론을 바꾸어 법안을 통과시키 는 등 믿지 못할 태도를 보였다.

교육부는 의당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육관계법의 통과를 당연시하면서 사학재단의 비리를 대대적으로 감사하 겠다고 발표하여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결국 지난 24일 정부는 끝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거부하고 개정안을 확정하여 공포했 다. 현재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오는 10월의 정기국회에서 재개정을 추진하는 일이다. 부패한 국회와 교육부, 최소한의 투명성마저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썩어 버린 사학의 비리구조를 생각하면서 답답한 심정을 억누를 길 없는 것이 비단 필자의 소회만은 아니 리라.

- 최갑수 교수(서울대 서양사·민교협 공동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