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3년 도입된 학부제는 대학가에 학사개혁의 바람을 몰아 왔고 지난해부터 모집단위 광역화 로 이행되면서 그동안 사회수요와 무관하게 운영돼 오던 학사조직이 유연해지고 합리화되는 계기 가 됐다. 이런 과정에서 사회수요가 비교적 적은 학문분야를 중심으로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으며 기초학문 학자들의 자성론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하지만 과거 학과별로 학생을 모집했던 시절에는 기초학문 육성을 둘러싼 논의 자체가 없었다는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광역화 모집이 시행된 이후 학생들이 취업전망 등을 고려, 기초학문 을 기피하기 시작하자 기초학문 위기라는 논리가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혹자의 주장처럼 이제 다시 학과단위 모집으로 전환한다고 해서 기초학문의 활로가 모 색될 수 있는가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에 우리나라 대학의 구조와 현실을 감안, 기초학문 육성을 위한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학사개혁 방안을 모색해 본다.

첫째, 기초학문은 공공재이므로 국립대에서 맡아야 한다는 논리는 수정돼야 한다. 국립대에서 배출되는 인력은 24%에 그치므로 사립대도 기초학문을 적정수준에서 양성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광역모집을 통해 수급을 자율 조정하되 소수정예로 슬림화해야 한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무 제한 선택권을 부여할 경우 학생이 몰리는 전공은 교수가 모자라 교육의 질이 낮아지고 기피되는 전공은 교수신분이 위태로워지는 모순이 생겨나므로 합리적인 전공 배정은 불가피할 것이다. 특히 대규모 종합대는 단계적 이행이 더욱 요청된다.

셋째, 학생들의 진로(Tracking)에 따른 전공지도가 있어야 한다. 연구개발(R&D) 인력으로 가는 학생은 폭넓은 교양과 기초학문의 전공을 유도하고 취직할 학생은 전공 심화학습을 지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취업을 목표로 하지만 불가피하게 기초학문을 공부하는 학생에게는 연계전공, 복수전공 등을 허용해 사회 진출에 불이익이 없도록 도와줘야 할 것이다.

넷째, 교육과정 개발 등 교수들의 자구노력이 있어야 한다. 모 교수는 생명복제와 철학적 과제라 는 연계강좌를 개설해 학생수요 창출에 성공했으며 외국어문학을 지역학 또는 지역문화로 개편,무역일꾼 양성에 나선 대학의 사례도 있다.
교양강좌의 강화, 학문간 연계과정 또는 연계전 공, 지역대학과의 공동과정 개설 등 사회와 미래의 수요를 과감히 수용하는 열린대학일수록 기초 학문의 입지를 넓혀 나갈 수 있다고 본다.

다섯째, 정부의 보호육성 대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두뇌한국(Brain Korea) 21 등 정책사업은 물 론, 연구비 등 재정지원에서 기초학문의 몫을 따로 책정해야 하는 것이다. 대학원에서 응용학문 전공자는 융자로 지원하되, 기초학문 전공자는 장학금·해외연수·조교 등으로 무상지원을 강화 해야 할 것이다.

여섯째, 각 대학 스스로도 기초학문 보호를 위한 각종 정책을 강구해야 한다. 교양교육의 강화, 수업시수 축소, 실험·실습비 배정, 장학금 및 연구비 배정에서기초학문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교육부는 학생 선택권 보호라는 정책방향은 추구하되 각 대학이설립목표와 특성에 맞는 자율적학사개혁을 추진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또한 기초학문의 육성은 국가적인 과제라는 인식 아래 학 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 종합적인 육성방안을 마련 중에 있다. 교육부는 늘 현장의 고견을 기다 린다.

<김화진·교육부 대학학사제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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