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탁하부정(上濁下不淨)', 동서고금을 통하는 진리이다. 오늘날 삼국지에서 조조를 주인공 으로 보는 시각들이 많다. 물론 제갈량, 방통, 주유 등 천하의 대표적 지략가들과 홀로 대적 하여 천하통일의 기반을 닦은 그의 업적을 과소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유심히 살펴보면 조조의 위나라 이후 수나라 때까지 약 3백여 년간 중국은 역사상 유래없는 혼란기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혼란의 원인은 실은 조조에게 있는 것이다. 조조 자 신이 무력으로 황위(皇威)를 우롱하고 그 자손이 황위를 찬탈하니 자신의 부하들이 이를 배 운 것은 너무 당연하다. 유비가 죽으면서 황위를 가져가라고 하자 울면서 이를 거부한 제갈 량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위를 멸망시킨 사마염은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자신의 혈족 들을 왕으로 봉해 중국을 다스리게 했지만 이내 골육 상쟁이 시작되어 소위 '팔왕의 난'이 발생한 것이다. 이 또한 신하로서 황제를 폐한 사마염의 가르침을 그의 자손들이 열심히 본 받은 결과일 것이다.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지 잘 보여주고 있다.

흔히들 우리는 지금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들 한다. 그런데 그 위기의 실상은 모범 적 어른들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모범적 어른이 없다는 것은 어른들 모두가 부도덕하다 기 보다는 모범적 어른이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사회구조가 마련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 한국 사회의 구조는 어떤 것일까. 한국이라는 건축물의 초석은 '정경 유착'과 '도덕적 해이' 이고, 지붕을 받히는 기둥들은 학연, 지연, 혈연이다. 사정이 이러니 한국이라는 집에는 실력이 있거나 도덕적인 사람들은 있을 자리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세 계화'되는 환경을 버티지 못한 것은 극히 당연하다. 세계의 무대는 학연, 지연이나 혈연으로이겨낼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당면한 국가적 위기의 책임은 '모범을 보이지 못하는 어른'들에 있겠지만, 그 본질 에는 '학연이나 지연을 부추기면서 실력있는 한국인의 양성에 실패한' 대학이 있다. 즉 매우 복잡하고 다기해 보이는 한국 위기의 근원에 '대학'이 있다는 뜻이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위기의 시대'에 산다기 보다 '대학 교육의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대학 들이 안팎으로 정치에 지나치게 오염되어 있으니 학생들이 이를 먼저 배운다. 대학에서부터 실력보다는 인간관계를 중시하고, 공부보다는 먼저 인간이 되라는 말을 귀따갑게 듣는다. 그 런데 '인간이 되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편을 가르기가 일쑤이고, 제자 의 논문을 착취하고, 자신과의 친소 관계에 따라 학점을 주는 일이 다반사이다. 공사를 구분 하지 못하는 것이 한국 교육의 고질병이다. 발빠른 학생들은 대학에서부터 '공부는 적게 하 고 졸업은 쉽게 하는' 경제 원칙을 터득해 가니 그만큼 사회적응도는 빨라서 좋겠지만, 그 학생들에게 우리의 미래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천년이 새로 시작되려 하는 지금 대학은 '위에서 부터의 변화'를 통해 거듭 나야만 한다. 가장 훌륭한 교육은 대학의 어른들이 오직 '백세지사(百世之師)'로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학 생들은 언제나 감동할 수 있는 순수성을 가지고 있다. 좋은 학생은 좋은 스승이 만드는 것이다.

- 김운회<동양대 기획과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