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질적 발전 없이 국가와 사회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대학이 제 기능과 본분을 다하지 못한다면 개혁에의 요청은 당연하다. 현재 교육과학기술부는 국립대 법인화만이 유일한 대안이란 입장을 보이고 있다. 대학 자율권을 확보하고 재정을 확충해 획기적으로 교육·연구역량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이란 게다. 하지만 국립대 법인화의 실제 내용은 대학이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개혁 방향과는 너무 다르다.

첫째, 국립대 법인화는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양질의 고등교육 제공과 기초학문 육성이라는 국립대의 임무를 더 이상 수행하지 못하게 하는 정책이다. 국립대의 본질과 존립 이유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둘째, 국립대 법인화는 OECD 최하 수준의 고등교육 재정을 확충하기는커녕 재정 운용의 책임을 개별 대학과 학부모 등에게 전가하겠다는 것이다. 국가가 교육 공공성을 파기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셋째, 국립대 법인화는 재정과 인사 등에서 개별 대학에 자율성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부 추천 이사를 비롯한 여러 간접적 방식으로 대학을 통제하게 돼 있다. 대학에 대한 자율성 부여는 허울일 뿐, 정부가 여전히 대학을 지배하게 될 신(新)관치정책이다.

넷째, 국립대 법인화는 지역균등 발전과 고등교육 기회 제공 확대가 아니라 오히려 현재의 대학서열화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수도권과 지방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지방 국립대를 고사시키는 정책인 셈이다.

다섯째, 국립대 법인화는 대학 민주주의를 퇴보시키고 대학의 본질적 기능인 교육과 연구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비판정신과 창의성, 다양성을 파괴한다. 국가와 사회 발전의 전제인 대학의 진정한 경쟁력과 학문의 균형적 발전을 가로막는 정책이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대학 개혁의 방향은 어떤 것일까.

우리 대학들이 교육·연구·봉사라는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근본적 원인의 하나로 열악한 교육 여건을 들 수 있다. 국내총생산의 1% 이상을 고등교육 예산에 투자하는 선진국들에 비해 우리나라는 2008년 기준으로 0.4%의 예산을 투자하는 데 그쳤다. 국가의 안정적 재정 지원이야말로 대학의 경쟁력 향상과 지속적 발전을 위해 가장 필요하다.

대학이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대학운영의 의사결정구조가 획일적 통제에서 벗어나 자율성·공공성·민주성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대학 의사결정체제의 기본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진정 대학의 경쟁력을 바란다면 정부는 예산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대학에 최대한 재정 지원을 하고, 대학의 자율적 결정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대학은 △지식 생산 △비판적 지성 함양 △창조적·능동적 인재 육성 등을 통해 사회의 균형있는 발전과 국가의 미래 개척을 위한 토대 구실을 하는 공적 기관이다. 따라서 학생들에게 오직 취업을 위해 도구적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게 하는 현재의 교육 풍토를 일신해야 한다. 또한 학생들이 사회적 문제를 인지해 합리적으로 비판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갖추고, 나아가 인간성과 협동심을 함양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다양한 개성과 창의력을 꽃피울 수 있는 연구 환경을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있다. 교수 상호간 불공정한 무한경쟁 체제의 도입이 아니라, ‘협조를 바탕으로 한 경쟁체제’의 토대를 마련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단기적·가시적 성과를 제시해야만 하는 정치적 시각으로 교육 문제에 접근해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대학 구성원들을 비롯한 고등교육 전문가들의 총의를 모아야 할 때다. 국립대와 사립대, 수도권 대학과 지방 대학, 기초학문과 응용학문 사이의 균형발전을 기할 수 있고, 우리 학문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진정한 대학 개혁안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