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대 등록금 동결 또는 3% 인상 이내”라는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제시한 지침은 사립대 총장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자율권 침해”일까? 

학교 앞 원룸을 얻어도 임대차계약서가 있는 법인데, 앞으로 몇 년 다닐 대학의 등록금에 관해 아무런 계약이 왜 없는지부터 생각해 보자. 교육자와 피교육자 사이에 존재하는 교육계약의 본질은 학생과 학부모가 교육자에게 맡긴 절대적인 신뢰에 있는 것이다. 등록금 인상에 관한 의사결정도 이들이 일차적으로 학교 당국에 위임한 것이다. 신뢰를 바탕으로.

그러나 학생들이 대학에 신뢰를 위임할 수 없는 형편이라면 등록금에 관한 누군가의 중재나 개입은 자율권 침해가 아닐 것이다. “총장의 판공비를 공개해라,” “적립금 운용현황과 투자내역을 공개해라” 등 여러 법원판례는 대학이 구성원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대학이 스스로 공개해야 할 회계정보를 법원에 끌려 갈 때까지 감추고 감추면서 구성원들로부터 무슨 신뢰를 얻겠다는 말인가.

이런 대학들을 상대로 등록금 인상 폭에 대한 정부 지침은 정당하겠지만, 그 효과가 있느냐 없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등록금 인상을 억제하려는 정부의 노력이 결실을 맺으려면 대학에서 불필요한 경비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막는 제도 장치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첫째, 대학에서 돈이 어디에서 들어오고 어디로 나간 것에 관해 구성원들이 아무 때나 파악할 수 있도록 회계정보가 투명해야 한다. 회계정보의 공개수준은, 예컨대, 이사장이나 총장이 언제 어디서 누구를 상대로 얼마를 업무추진비로 사용했는지를 구성원 모두가 원하면 자유롭게 볼 수 있는 정도까지 도달해야 한다. 건물/단위면적 당 전기료, 난방비 등을 쉽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건설공사비도 세세하게 공개해야 한다. 미국의 주립대학처럼 대학 운영경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개인 별로 공개해야 한다. 대학회계의 투명성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한참 후진국이다.

둘째, 학교가 예산을 적정하게 운용하고 있음을 누구나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학생들은 대학을 어떻게 경영해야만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지에 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교육 수혜자가 직접 나서 대학당국의 모럴해저드를 감시하기가 어렵다. 그럴수록 학생들로부터 신뢰를 위임받은 재단이사회가 대학당국의 모럴해저드를 제어하는 감시기능을 행사해야 한다. 불행히도 우리네 현실은 그러하지가 못하다. 심지어 정부가 대학을 불법천지로 만드는 재단을 방관하고 있는 지경이다. 재단이사회가 학습권을 보호하는데 필요한 감시 ? 감독기능을 행사하도록 사립학교법의 전폭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셋째, 부당한 교수임용, 불법한 교비투자 또는 과다한 적립금 축적 등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는 결국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는 비용으로서 부정한 등록금 인상과 동일하다. 불필요한 경비를 발생시키는 불법 ? 부당행위에 대한 정부의 신속하고 단호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 대학에서 발생하는 불법행위나 부정회계를 방관하는 부패관료는 엄중한 벌로 다스리자. 금융기관처럼 사립대학 내에 학습권을 보호하는 준법감시인(compliance officer) 제도도 바람직하다. 

대학이 학생들로부터 받은 돈을 얼마나 적절하게 쓰느냐에 관한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등록금 인상을 억제하려는 정부 시도는 학생들에게 커다란 도움을 주지 못한다. 현재의 학생과 미래의 학생 간에 이해상충만 심화시킬 뿐이다. 대학의 재무회계가 투명하고, 대학재단 이사회가 학습권을 보호하는 지배구조를 갖추며, 정부가 사립대학 감독책무를 제대로 이행해야만 사립대 등록금 인상에 관한 정부 지침이 그 효과를 제대로 발휘할 것이다. 지금처럼 교육과학기술부가 사립대학의 비리나 부패를 방관하는 상황에서 등록금 인상 억제 지침은 정치 쇼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