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방화(Glocalization)라는 말이 널리 회자되고 있다. 세계화(Globalism)과 지방화 (localization)의 합성어로 세계가 하나로 묶여버린 지구촌 시대에 지방의 독자적 특성이나 자원이 더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측면에서 만들어진 말이라고 보여진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러한 세계적 추세와 지방자치제의 정착에 힘입어 각 지방마다 특성을 살린 독자적인 발전 을 도모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지방대학은 오히려 위기에 직면해 있다. 대학의 위기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 거대 담론을 형성한지는 오래된다. 대학의 위기는 내부적 요인 과 대외적인 요인에서 살펴볼 수 있다. 내부적 요인으로는 그동안 타성에 젖은 고비용 저효율의 방만한 대학운영에서 비롯된 점도 있고, 시대적 변화와 학문의 발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으며, 수요자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못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대외적 요인으로는 대입 지원생의 급감, 정보통신기술의 급속한 발달과 세계화로 인한 세계 유수 대학간의 경쟁의 심화, 학문 발전의 가속화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대학의 위기에 더하여 지방대학은 또 다른 막중한 위기에 처해 있다. 우선 학생들의 수도권 선호 현상이 갈수록 강화되어 지방대학의 공동화 현상까지 벌어질 상황이며, 지방 출신 우수 학생의 수도권 집중화로 지방대학은 우수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교육 여건도 수도권대학보다 열악한 상황이기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고, 취업에 있어서도 취업률도 낮은 편이며 더군다나 취업의 질은 매우 낮은 형편이다. 더불어 지방대학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와 산업체의 지원과 관심도 부족한 지경이기 때문에 이러한 위기 요인과 맞물려 지방대학은 악순환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지방대학의 절대 다수를 점유하고 있는 사립대학은 지방국립대학에 비해 더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자구 노력을 각 지방대학마다 기울이고 있지만, 재정을 비롯하여 여러면에서 아직도 부족하다. 따라서 지방대학의 육성과 발전을 위해서는 대학 자체의 노력과 정부당국, 사회의 관심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21세기가 지식의 창출과 활용이 경쟁력의 핵심인 지식기반사회로 진입한다는 것은 불문가지 의 사실이며, 또한 시간과 공간적 장벽을 해소하는 세계화, 정보화가 가속화되는 것도 자명하다. 특히 정보화·개방화로 인해 세계화·지방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변화는 궁극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 창출을 요구하고 있고, 이는 한 사회의 지식과 정보가 밀집된 대학에게는 더욱 절실한 문제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적 패러다임의 변화는 대학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대학에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도권 소재 대학보다는 지방 소재 대학에게 더 큰 발전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지방과 세계의 직접적 연결, 공간적 장벽의 해소 등은 지방이라는 지리적 제약을 극복할 수 있 는 여건을 만들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차적으로는 지방대학이 지역의 여건을 감안한 특성화프로그램을 창출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백화점식 대학운영에서 탈피하여 지역의 특성과 독자적 전통을 학문적 사회적 으로 재생산하는 특성화 전략이 요구되고, 지역산업과 밀착하여 기술 개발 이전을 선도할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중앙과 지역의 격차가 너무 커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기도 하기 때문에 당연히 중앙정부와 행정당국도 과감한 지원과 정책의 변화를 시행해야 한다. 둘째로는 지방대학도 세계의 유수한 대학과의 경쟁을 회피할 수 없기 때문에 외국과의 학생, 교수, 교육·연구 프로그램의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회간접자본의 투자가 상대적으로 미흡한 점이 세계적 교류에 있어서 지방의 약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으나, 한편으로는 공룡화해 버린 우리 나라 수도권이 지니고 있는 한계나 약점도 적지 않다는 점과 상쇄할 수 있기도 하다. 셋째로는 지방대학은 지역사회와 보다 밀착한 다양한 교육학습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지식이나 기술의 생명이 짧아져 평생동안 계속적인 학습이 필요한 시대적 변화는 지역주민과 지역산업체의 재교육을 지방대학이 담당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또한 일과 학습, 여가가 융합되는 식으로 교육과 생활 패턴이 바뀌고 있기 때문에 지방대학은 평생학습센터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수요자 중심으로 교육패턴을 구축하는데 지방대학이 앞장서야 한다. 천편일률적인 고등학교 교육에 의한 입시생의 서열화 구조에서 탈피하는데 지방대학이 앞장설 필요가 있다. 소숫점 몇 자리까지 세분화된 성적에 의해 학생의 미래가 결정되는 방식이 아니라, 학생 개개인의 소질과 적성을 존중하고 자신의 개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이 구축될 필요가 있으며, 이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적고 변화가 용이한 지방대학에서 먼저 시도해야 한다. 지방대학의 이러한 노력과 더불어 중앙정부와 교육정책당국에서도 획기적인 사고의 변화가 요구된다. 지방이 낙후되거나 몰락하면 곧 국가가 위기에 놓인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도권 대학보다는 지방대학을 중점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수도권으로 모든 것이 집중되어 발생하는 폐해가 우리 사회의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지방을 살리는 정책이 요구되며 이는 지방대학의 경쟁력 강화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예를 들면 21세기를 선도할 이른바 정보통신산업, 환경산업, 콘텐츠산업, 생물산업, 나노기술산업, 우주항공산업 등과 같은 첨단산업 분야는 물론 경우에 따라서 집중과 분산의 원칙들이 적용될 필요는 있을 터이지만, 굳이 수도권 중심으로 육성될 필요가 없는 분야들이다. 이러한 학문·산업기술분야는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유도만 있다면, 우수 연구인력을 지방대학이 유치하고 이를 기초로 연구와 교육을 진행하여 국제적 경쟁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예를 스탠포드대와 실리콘 밸리, MIT대와 보스턴 밸리 등과 같은데에서 충분히 찾아볼 수 있다. 지역사회나 지역의 거점도시들도 대학을 중심으로 지역의 발전을 도모하는 전략이 요구된 다. 이전에는 중앙정부의 지침이 하달되는 형식의 행정이 이루어졌고, 지역과 지역 거점도시 도 대부분 중앙을 바라보며 모델을 찾아왔다. 이런 속에서 일찍 지역을 벗어나서 중앙에서 교육받은 인재들이 지방의 행정이나 정책, 산업을 이끌다보니 지방의 특성이나 독자성을 추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지방자치가 정착되고 급속한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에 의해 시공간적 제약이 사라진 오늘에 있어서는 지역의 대학을 중심으로 관계, 학계, 산업계, 지역민의 협력시스템이 구축될 필요가 있다. 지역의 약점과 강점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이를 학술적으로 탐구하고 산업과 연결시키는 작업은 그 지역의 두뇌와 정보가 집적되는 대학이 담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앙과 지방은 예전의 종속적 관계에서 이제는 대등한 관계로 바뀌었다. 지방의 독자적 발전을 추구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된 것이다. 또한 세계적으로도 국가 대 국가의 경쟁보다는 지역별, 도시별 경쟁이 강화되고 있다. 프랑스라는 이미지보다는 파리라는 이미지가 더 강하고, 이태리보다는 밀라노가 더 친숙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칸느라는 도시는 익히 알지만, 이 도시가 속한 나라가 어딘지는 잘 떠오르지 않는 점이 바로 이를 보여준다. 가까운 일본도 도쿄나 오사카라는 도시 중심적 이미지 구축에 더 노력하고 있는 실정이다. 개혁개방정책의 실시 이후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중국도 전체 중국이라는 발전전략보다는 도시와 지역 중심의 발전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가까운 장래에 중국이라는 이미지보다는 '상하이, 선쩐, 베이징'이 더 명료한 이미지를 지니고 세계와 인류의 뇌리에 기억될것이다. 이런 추세에 따른다면 아마 'Made in Korea' 보다는 'Made in Kwangju, Taegu, Pusan'이라는 상표가 더 각광을 받게 될 날이 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반드시 그 지방에 소재하고 있는 대학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다행히 정부에서도 '지방대학 육성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교육인적자원 부에서도 '지방대학육성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점들은 무척 고무적이나 지방대학의 안정과 발전이 지역을 발전시키는데 가장 핵심적 부분이라는 점을 십분 감안하여야 한다. 특히 지방국 립대보다는 지방사립대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전시성이 짙은 정책보다는 내실 있는 정책이 지속적으로 집행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물론 지방대학들도 뼈를 깍는 내부적 혁신과 자구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고, 지역사회도 지역 소재 대학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더욱 필요하다. 이를 통해 대학과 지역, 그리고 정부정책이 올바르게 결합하여 궁극적으로 대학이 살고, 지방이 발전하고, 국가가 성장하는 길을 도모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