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각 대학에선 장애학생들의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개선책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러나 장애학생들은 여전히 대입에서부터 학업, 취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대다수 대학들이 마련한 장애학생 지원책이 알맹이 없는 ‘허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대학이 장애학생 문제의 실질적 개선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숭실대가 이달 6~7일 개최한 ‘2011 시각장애 인식개선 캠페인’에서 시각장애 체험을 하고 있는 학생들.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는 무관합니다.>
■ ‘유명무실’ 장애학생 특별전형
이달 6일 본지가 전국 4년제 대학 220여 곳의 2011·2012학년도 입학요강을 분석한 결과, 장애인 학생들을 위한 ‘특수교육대상자 특별전형(이하 장애학생 특별전형)’을 개설한 대학은 90여개뿐이었다. 전국 4년제 대학 중 고작 40%정도만 장애학생 특별전형을 마련한 셈이다.
정부는 지난 1995학년도부터 각 대학이 장애학생 특별전형을 설치, 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의 대입 경쟁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조치하고 있다. 그러나 장애학생 특별전형의 실시 여부는 대학의 자율적 결정에 달려 있어, 이를 불이행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현재 장애학생 특별전형을 개설하지 않은 130여개 대학 중엔 덕성여대, 동덕여대, 서울과학기술대, 서울여대, 서울시립대, 성신여대, 세종대, 인하대, 홍익대 등 수도권 소재 학교들도 대거 포함돼 있다. 상위권에 랭크돼 있는 대학들조차 장애학생의 입학권 보장엔 무관심한 것이다. 해당 대학들은 학내에 장애인 교육 시설, 복지서비스 등의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점을 전형 미설치의 주된 이유로 든다.
서울과학기술대 입학관리팀 우성주씨는 “학내에 장애학생들을 위한 교육 인프라가 미약하다”며 “장애학생 특별전형으로 입학한 학생이 대학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 전형 자체를 개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또 서종욱 홍익대 입학관리본부장은 “장애학생들을 위한 인프라가 없는 상태에서 (학생을) 선발하는 건 뽑아놓고 책임지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대학들의 태도에 장애학생들은 울분을 토한다. 서울 소재 한 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인 지체장애인 김정연씨(22, 가명)는 “많은 대학들이 교육 인프라 부족을 이유로 장애학생 특별전형을 개설하지 않고 있으나, 핑계에 불과해 보인다”며 “오히려 대학들이 장애학생을 선발하고 싶지 않아 인프라 구축을 미루고 있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어 김씨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대학에 입학원서조차 넣어볼 수 없는 건 부당한 일”이라며 “정부가 장애학생 특별전형의 실효성을 높일 뜻이 있다면, 실제 시행 기관인 대학을 어느 정도 강제 규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바늘구멍 뚫고 들어왔지만…”
어렵사리 대학에 입학하면, 이번엔 학교생활이 문제다. 최근 장애학생지원센터, 장애인 전용주차장, 수업 도우미 배치 등 장애학생들을 위한 별도의 시설·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학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대학에선 의무적으로 갖춰야할 장애인 복지체계조차 마련하지 않은 실정이다.
장애인특수교육법 제30조에선 각 대학에 장애학생이 9명이상이면 ‘장애학생지원센터’를 설치토록 명시했다. 장애인 대학생이 10명이상일 경우엔 특별지원위원회까지 함께 두는 게 원칙이다. 문제는 특수교육법에 제시된 인원이 재적 인원인지, 혹은 재학생 인원인지 명확치 않다는 점. 이는 대학들이 의무 사항인 장애학생지원센터, 특별지원위원회 설치를 회피케 하는 빌미가 되고 있다.
실제로 세종대엔 장애학생 12명이 등록돼 있으나, 장애학생지원센터는 없다. 장애학생 가운데 휴학생이 4명으로 재학생은 8명에 불과하다는 이유다. 세종대 학생지원과 관계자는 “재학생이 8명이라 9명에 미달되는 수준이기 때문에 장애학생지원센터 설립 기준에 미달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사회 곳곳에선 대학의 시정과 함께 정부가 특별지원법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장애인교육권연대 이혜영씨는 “장애인 특수교육법에 명시된 장애인 학생 수 기준이 해석하기 나름인 게 문제”라며 “특수교육법이 실효성을 가질 수 있게 법이 재정비돼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장애학생들을 위한 맞춤형 학습 지원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시각장애 학생들의 경우 강의 교재를 점자·음성도서로 전환하는 데 보통 1~2개월이 소요돼 수업 자체를 제대로 듣기 어렵다.
김영일 조선대 특수교육과 교수(시각장애 1급)는 “시각장애 학생들이 강의 교재의 점자·음성 전환을 신청한 뒤 받아보는 데까지는 반 학기 가량의 시간이 소요된다”며 “맞춤형 교재를 받아보기 전까진 교수의 목소리에만 의지해 강의를 들어야하기 때문에 난감한 점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출판 과정에서 생성되는 디지털 파일만 있다면, 시각장애인 스스로 출판된 도서를 점자나 음성매체로 변환해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출판사·저작자가 디지털 파일의 외부 유출을 우려해 디지털 파일 제공을 망설이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에 대한 기술적 보호 수단도 있고, 법·제도도 마련됐다. 정부는 디지털 파일 확보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출판사·저작자도 열린 마음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 “벌금 내지 뭐…” 기업은 장애인 고용 기피
우여곡절 끝에 대입, 학업을 무사히 마쳤더라도 장애학생이 취업에 성공하기란 하늘의 별따기 보다 어렵다. 대다수 기업들이 장애인 고용을 기피하고 있는 탓이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등에 의하면 현재 직원 수가 50인 이상인 민간 기업은 2.3%, 정부·공공기관은 3%를 장애인으로 의무 고용해야 한다. 또 장애인 의무고용 인원을 준수하지 못한 사업주는 미고용 1인당 최소 56만원의 고용부담금을 납부해야 한다. 고용부담금은 장애인 의무고용 인원을 실행하지 않은 사업주가 내야하는 벌금을 뜻한다.
그러나 장애인 고용을 촉진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법령에도 기업들은 “장애인을 채용하느니 고용부담금을 무는 게 낫다”는 반응이다. 국내 한 대기업 관계자는 “장애인을 고용할 경우 그를 위한 각종 시설들이 마련돼야 하고, 동료들이 업무상 배려해 줘야 하는 부분도 많다”며 “기업으로선 이 같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보다 고용부담금을 내는 게 낫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 2009년 말 기준, 국내 정부기관은 1.97%, 공공기관은 2.11%의 형편없는 장애인 고용율을 보였다. 더불어 지난해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준수하지 않은 95개 공공기관이 납부한 고용부담금은 총 39억 8419만원에 달했다.
이와 관련, 이명박 대통령은 이달 18일 제63차 라디오·인터넷 연설에서 “정부와 공공기관도 민간보다는 높지만 여전히 의무고용률을 못 채우는 게 사실”이라며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는 사업주는 대신 고용부담금을 내야 하지만 제도 이전에 의식과 문화가 바뀌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이 대통령은 “장애인 근로자 상당수가 일에 대한 열정과 집중도, 그리고 책임감이 매우 높다”며 “우리 기업들이 단지 장애인 고용률을 준수하겠다는 소극적인 태도를 넘어서 적극적으로 장애인 일자리를 창출해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민현희 기자, 캠퍼스라이프 박혜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