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들이 교양교육의 ‘틀’을 새로 짜고 있다. 매학기 교양과목 중 일부를 바꾸는 수준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담당부서를 신설하고, 커리큘럼을 대폭 개편하는데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융합에 기반한 다양한 학과들도 개발되고 있다. 전공교육을 위한 통과의례로 취급받던 교양교육은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을까. 신학기를 맞아 교양교육 개편에 나선 대학들의 ‘실험’이 주목받는 이유다.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설립=경희대는 이번 학기 ‘대학 교양교육의 본질을 되찾자’는 슬로건 아래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설립했다. 교양강좌를 듣는 학생들은 특정 학점 이상 이수 시 복수전공으로 자유교양학 학사학위를 딸 수도 있다. 이른바 ‘교양대학’인 셈이다.
도정일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원장은 이와 관련 “지금까지 우리 대학들의 교양교육은 전공의 일부를 가르치는 수준 정도에 그쳤다”면서 “전공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된’ 교양교육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신설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후마니타스 칼리지는 다른 대학과 차별화한 교양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중핵교과 △배분이수교과 △기초교과 △자유이수교과 4개의 트랙으로 운영하는데, 특히,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중핵과목은 생소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낯설다. 1학기 중핵과목은 ‘문명전개의 지구적 문맥 I : 인간의 가치 탐색’, 2학기 중핵과목은 ‘문명전개의 지구적 문맥 II : 우리가 사는 세계’로, 신입생들은 1년 동안 이 과목을 필수 이수해야 한다.
도 대학원장은 중핵과목에 대해 “1년에 두 과목을 서울캠퍼스와 국제캠퍼스 모두 합쳐 5000여명의 학생이 동일한 텍스트를 통해 공부한다”며 “철학·문학·역사·사회·자연과학이 모두 들어가 있는 융합과목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중핵과목 이외에 학생들이 반드시 익혀야 할 7개의 중요한 주제 영역을 다루는 ‘배분이수교과’와 글쓰기·영어·시민교육 등을 포함한 ‘기초교과’, 외국어·체육·예술 등 ‘자유이수교과’ 역시 녹록치 않다. 4개의 트랙과 모든 과목은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는 게 목적이다.
■대구가톨릭대 교양교육원 출범=대구가톨릭대는 올해 교무처 산하에 ‘교양교육원’을 출범시켰다. 그동안 교양교육이 지식을 전달하는 주입식 교육에 그쳤다는 판단 아래, 문제를 해결하는 사고력을 길러주는 쪽으로 교양교육을 바꿀 예정이다.
백용매 대구가톨릭대 교양교육원장은 이에 대해 “전반적으로 교양교육이 강화되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도 마찬가지 추세”라며 “전공교육도 중요하지만 교양교육에서 소양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교양교육원이 출범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백 교양교육원장은 이러한 시도들과 관련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업에서 원하는 졸업생은 ‘현장에 즉시 투입할 수 있는 인재’였지만, 이제는 창의력을 갖춘 인재들이 필요한 시대”라면서 “교양교육이 취업과 동떨어진 것 아니냐는 비난이 뒤따르는데, 우리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본다. 현장보다 기본이 탄탄하고 창의력 있는 인재, 세계에 나가서도 써 먹을 수 있는 인재를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가톨릭대 교양교육원이 추구하는 것은 ‘융합에 기반한 다양한 사고’다. 연구 결과, 대학 경쟁력을 높이려면 융합을 위주로 교양교육을 개편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이에 따라 여러 작업들을 해왔다. ‘인문학적 사고와 표현’ ‘예술적 사고와 표현’ ‘사회과학적 사고와 표현’ 등 20개의 신규 교과목을 개발, 이번 학기부터 시범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교양을 담당하던 교수 역시 전공 학과 소속 교수들이 아니라 시범 운영 후 새로 충원할 예정이다. 백 교양교육원장은 “교양교육을 전담으로 하는 교수도 뽑고, 이들에게 영역별로 교과목을 개발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조선대, 기초교육대학으로 승격=조선대는 지난 1년 동안 운영하던 기초교육원을 올해 초 기초교육대학으로 승격시켰다. 기초교육원은 그동안 융합적 사고역량 교육을 위한 핵심교양 교과목들을 개발해 왔는데, 이번 위상강화를 통해 영역별 책임교수제 도입·학부교육연구소 설치 등 굵직한 일들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임재진 조선대 기초교육대학장은 이에 대해 “지난 2008년 초반 팀을 구성해 교양교육체제의 개편에 대한 연구를 모두 마쳤다”면서 “교양교육을 지금처럼 해선 안 된다는 게 당시의 결론이었고, 이를 위해 기업의 총수나 인사 담당자들이 대학 졸업생들에게 원하는 게 뭔지 조사를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교양교육의 목표는 ‘기본기를 갖춘 지방 대학 졸업생’이었다는 것.
이에 따라 지난 2009년 후반부터 기초교육원에서 교양과목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팀 티칭이 가능하고, 특정교과목이 아닌 포괄적인 교과목 개발에 힘썼다. 이렇게 해서 나온 과목이 필수과목인 ‘사고와 표현’ 등이며, 현재 13개 교과를 개발했다. 이들 중 이번 학기에 8개 과목이 개설돼 운영 중이다
특히 ‘명저읽기’ 과목의 경우 해를 거듭할수록 학생들의 지원이 늘고 있다. 학생 5~10명 정도 팀을 이뤄 여러 책 읽고 매주 마다 토론하는 프로그램인데, 개설 초반 참여교수가 5명이다가 올해 무려 34명으로 늘었다. 임 기초교육대학장은 향후 계획에 대해 “학부대학 정도 수준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면서 “각종 관련 센터를 마련하고 주임교수·책임교수 등을 정해 탄탄한 커리큘럼 마련 등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교양교육의 본질 바꿀 때다.” [인터뷰]도정일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장
“학제성의 원칙, 지구성·다양성·복잡성의 원칙, 지평융합의 원칙, 비직선성의 원칙, 문제탐색의 원칙, 핵심공유의 원칙, 여섯 가지 원칙이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골격입니다. 이 원칙에 맞춰 교양교육에 대한 접근부터 달리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진두지휘하는 이는 대표적 인문학자인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사진>다. 조인원 총장의 부탁으로 전체적인 그림을 설계하고, 1년 6개월여동안 준비위원회를 이끌어 오다 이번 학기부터 경희대 부총장급에 해당하는 ‘대학장’을 맡아 이끌고 있다.
도 대학장은 후마니타스 칼리지에 대해 “기존의 틀을 완전히 바꾸는, 그야말로 ‘혁신’이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4개의 트랙 중 하나인 ‘중핵과목’은 이름 그대로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핵심으로, 교수진이 무려 50여명에 달한다. 그동안 교양학부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교수들이 주축이 됐고, 외부에서 쟁쟁한 교수들도 영입했다.
“한 사람이 이 과목을 가르친다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그래서 가르치는 사람을 우리가 직접 양성하고, 서로 공부하고 연구해 가장 강한 교양교육 교수진을 만들 생각입니다. 그러니 교수들이 고생을 좀 해야 할 겁니다. 이번 학기 내내 교수들을 대상으로 한 워크숍이 진행됩니다.”
교수들은 워크숍에서 자신의 전공 내에서 알고 있는 것을 풀어놓고, 남들과 토론하고 연구하면서 배워야 한다.
“예를 들어 중핵과목의 제 1장이 사랑인데, 이를 위해 철학·문학·물리학도 들어오고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에리히 프롬·오비디우스 등이 등장합니다. 워크숍에 전문가를 모셔다가 배우고, 교수들은 ‘이렇게 가르치겠다’는 발표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게 어색할지 몰라도 저는 이들이 가르칠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할 거라 믿고 있습니다.”
후마나티스 칼리지는 학부교육의 지속적 혁신을 통해 대학의 역할과 책임을 수행하겠다는 경희대의 의지가 담겨 있다. 도 대학장은 여기에 “‘제대로 된’ 교양교육의 미래도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교육이 뭘까요? 들어올 때는 다른 인간이 되서 다른 인간이 돼 대학의 문을 나서는 겁니다. 인간을 형성시킨다는 게 그런 걸 겁니다. 교육의 최대목표는 자기 변화입니다. 후마니타스 칼리지는 그런 역할을 할 것이라 보고 있어요.”
지금까지 험난한 길을 걸어왔지만 여전히 길은 험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험은 성공할 수 있을까. ‘강의가 끝나면 학생들이 어떻게 달라질 것 같느냐?’는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 도 대학장은 말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19살 신입생이라 할지라도 모두 가치관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기의 행동을 지배하고 자기를 움직이게 강요했던 이 가치관을 대학이 성찰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게 맞는 것일까’는 의문과 함께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될 겁니다. 자기를 지배해 온 가치관을 비판적으로 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가치관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도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목표는 바로 그곳에 있습니다.” |